200%=군대, 보헤미안랩소디=태국

2023. 1. 9. 09:15카테고리 없음

나는 어떤 일정한 음악을 듣게 되면 그 음악을 한창 듣던 순간의 기억들이 굉장히 현실적으로 다시 살아난다. 

내가 음악도 음식도 영상도 한 번 빠지면 한동안 계속 반복해서 듣고, 먹고, 보는 습관이 있는데 그 때문일 수도 있고 그 순간의 기억이 강렬해서 일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그때의 감정, 상황, 분위기 심지어는 내가 있던 공간의 온도나 습도 그 감각까지도 생각이난다는 것이다. 

내가 절대 무슨 절대음감이나 음악적 조예가 깊은 편이 아닌데도 그때의 기억들 때문에 아련해지기도 벅차오르기도한다.

 

지금 생각하면 여러 가지 노래들이 있는데 첫 번째로, 초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는 체육대회 때 곤봉체조라는 것을 연습해서 학부모님들에게 선보이곤 했었다. 그때 음악이 '신형원 - 터'라는 노래인데 가사가 '한라산에 올라서서'로 시작한다. 어렸던 나에게 곤봉체조란 곤봉을 잡는 검지와 중지에 잔뜩 물집이 잡히고 연습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우는 애들도 있었을 정도로 고된 기억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사실 그때의 물집이 내 인생에 첫 물집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노래를 들으면 검지와 중지로 잡아들던 곤봉의 무게, 운동장에서의 그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다시 생각난다.

 

두 번째로는 '김경록-우린 이제 남이야'인데, 이때는 내가 중학교 시절로 한창 서든어택과 메이플스토리에 빠져 동네 피시방에 자주 다닐 때였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들으면 애절한 가사와는 정반대로 그때 피시방의 담배냄새, 문을 열릴 때 울리는 벨소리, 컵라면 냄새가 다시 내 감각 속에 상기된다. 그리고 옆에서 같이 게임을 하던 친구들의 분위기, 감정까지도 

 

그리곤 제목에 나온 두 가지의 노래인데, 악동뮤지션의 200%라는 노래는 내가 군대에서 막 자대배치를 받고 이등병으로 생활할 때 생활관 최고참의 취향으로 미친 듯이 듣던 노래이다. 실제 그 시절 음원차트 1위이기도 했고 말이다.

이 당시 나는 노래 선택권이 없었기에 최고참의 명령을 받아야만 노래를 틀 수 있었는데, 아침에 기상하자마자 해야 하는 일들의 순서가 생활관불 켜기 - 선임들 전투화 꺼내놓기 - 200% 노래틀기였다. 몇 달을 이 노래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고 그 기억이 워낙 강해서 아직까지도 이 노래를 들으면 움찔거리게 되는 부분이 있다. 남자들이 가득한 그 공간의 찝찝한 온도 낡고 오래된 침상과 관물대 정신없이 흘러가는 아침 준비시간까지 모든 부분이 이제는 아련하지만 생생히 생각난다.

 

마지막으로 '퀸-보헤미안랩소디'는 내가 태국에서 있을 때 이 영화가 개봉을 했었다. 사실 나는 이 영화는 본 적이 없지만 당시에 워낙 유행했기 때문에 이 노래를 접하게 되었고 마음에 들어서 자주 들었었는데 일을 나가기 전 샤워를 마치고 소파에 누워 잠깐의 5분, 10분 정도의 시간 동안 게으름을 피우며 이 노래를 듣곤 했다. 내가 살던 푸껫의 그 주택은 섬기후로인해 굉장히 습하고 앞집의 꼬마아이가 밤낮으로 울었는데 이 노래를 들으면 그 아이의 울음소리가 같이 들리는듯하고 내가 누워있던 인조가죽 소파의 감촉과 그 위 거친 쿠션의 까슬한 느낌까지 생각이 난다. 

 

위에서 얘기했던 음악을 들을 제외하고도 더 많은 음악들이 있는데 모든 것들을 소개할 수는 없지만 저 정도가 지금 당장 기억나는 가장 강한 메모리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이런 경험들이 어떤 것인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서치 해봤지만 정확하게 찾을 수는 없었다.

나쁜 기억의 트라우마라던가, 파블로프의 개실험과 같은 약간의 동떨어진 조건형성과 반응 같은 것들만 찾을 수 있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보다는 긍정에 가까운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들도 이제는 그립고 아련한 하나의 추억이 되었고 그때 인이박이도록 들었던 음악은 그 기억의 배경음악이 되어주고 있다.

 

음악 때문에 그 순간이 기억이 나는 건지, 그 순간 때문에 음악이 기억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명확한 건 나는 분명 그 순간을 그 음악들과 함께 내 감각에 나도 모르게 저장해두었다는 것이고 그렇게 저장된 음악들은 언제든 다시 그때의 구체적인 정보들을 내게 전달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mp3로 듣던 음악들이 생각나는 오늘이다.

학교가 끝나고 집 가는 길에 들었던 음악부터 퇴근길에 차속에서 듣는 음악까지

오늘도 내 감각엔 또 새로운 음악의 메모리가 저장되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