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미리보기 (feat.천명)

2022. 12. 12. 18:05카테고리 없음

글의 시작에 단단히 못 박아두자면 나는 종교, 신, 사후세계를 비롯한 그 어떤 초월적인 존재나 힘 등을 전혀 믿지 않는다.

 

최근 참여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에 조금 신박한 주제가 던져졌다.

'천명'이 바로 그것인데, 천명이 무엇이냐면 사주, 신점, 타로 등을 쉽고 간편하게 휴대폰으로 예약 및 실제 진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어플이다.

사용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카테고리별로 정리된 어플을 통해 거리, 예약 기간 등을 고려해 내 마음대로 선생님을 골라 상담만 받으면 됐다. 크게 어렵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없었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선생님을 골라 예약된 날짜에 진행을 하게 되었고 인사 후에 이름과 생년월일 정도만 던져준 채 신점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의 첫마디는 내년에 이동수가 있어 2월이나 3월쯤에 이직이나 이사등 거처나 생활방식을 옮기거나 바꿀 일이 있을 거라고 하셨고 그 이동수가 나쁘지 않으니 이동하라는 것이었다. 

실제 이와 비슷한 일을 계획중이라 신기한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굿 스타트가 나쁘진않네"

 

그 후 약 한 시간의 상담을 통했는데 전체적인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내년은 나에게 나쁠 것이 없는 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체적인 상담의 평가는 나름 만족스러웠고 개인적으로 들어맞는 부분도 많았다.

신기하기도 하고 나쁜 것이 없다고 하니 전혀 이런 분야를 믿지 않는 나도 나름 기분은 좋았다.

상담을 받는 기분도 들고 말씀하시는 것이 사람을 많이 상대해본 티가 났다.

편하게 내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본인의 생각을 더해 해결방안을 제시해 주시는 것이 전문적인 상담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게 만들었다.

 

사실 나는 이런 분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타고나고 재능을 가지듯, 이런 분야에 소속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파악하는 능력을 타고났다고,

예를 들어, 나 같은 경우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 대해 파악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여태껏 살면서 내가 파악한 사람의 성향이 거의 맞아 들었었고 경계하고 의심이 들게 만들었던 사람들은 결국 본색을 드러내는 것을 수차례 경험했었다.

실제로 내가 주변에 있던 한 사람을 조심하라고 주변에 경고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주변 다른 지인들이 그 한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뒤였다. 

나는 그 어떤 무당이나 종교인도 아니다. 평범한 일반인인 나도 이 정도는 할 줄었는데 나보다 훨씬 더 다른 사람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런 사람들이 이런 분야에 녹아든다는 생각을 한다.

 

또, 과거에 무서운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우리 친형과 함께 차를 타고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식당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식당 앞 큰 사거리에 웬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가 비를 맞으며 서있는 것이 아닌가, 형과 나는 이상한 사람이 다 있네라고 넘기며 식당으로 가게 되었다. 식당에 도착하자 어머니께서 오늘 아침 여기 앞 사거리에 사고가 나서 30대 중반의 남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그리고 다시 식당 밖을 나섰는데 남자가 서있던 그 자리엔 남자는 온데간데없고 사고가 났을 때 표시해두는 흰색 스프레이가 바닥에 그려져 있었을 뿐이었다. 분명 아까 올 땐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를 본 형과 나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형은 귀신을 봤다며 무서워했지만, 나는 아까 서있던 그 남자가 사고를 당한 사람의 유가족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바닥에 스프레이 표시는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했지만 그날은 비가 억수로 오는 날이었다.

도로 노면에 차선도 흐릿한데 바닥의 표시가 안 보일 수 있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닌가.

같은 상황을 두고도 이렇게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또,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의 재량도 한 몫한다. 한쪽을 강력하게 믿는 사람이 자기 쪽의 의견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내면 한 가지의 이야기가 무서운 이야기가 될 수도, 허무맹랑한 경험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이 상당한 말재주까지 지녔다면 거기에 현혹되긴 더 쉬울 수도 있다.

 

이번에 천명을 통해 상담을 받으면서 나는 이 사람들을 믿지 않으니까, 어디 한번 나를 설득시켜보시지 라는 태도는 절대 가지지 않았다. 그것은 나는 실례라고 생각한다. 내가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정답은 절대 아니니까,

다만 내가 이번에 놀랐던 부분은 생각보다 나에 대해 잘 파악하시고 내 대화에 맞춰주는 스킬이 뛰어나서 나도 모르게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고 상담을 받은 듯 한결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신을 믿지 않기에 상담이라 치부하나

모든 게 정답일 수도 아닐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