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한국살이하기

2023. 1. 21. 22:41카테고리 없음

때는 2017년 4월 대한민국 첫 여성대통령이 탄핵되고 그로 인해 보궐선거가 진행되던 바로 그때

나는 태국으로의 여행을 떠났다.

그 당시 나는 24살로 경찰특공대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었고 첫 번째 시험을 좋지 못한 결과로 마무리 짓고 지난 1년간의 고생에 스스로 주는 보상으로 태국행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그 티켓은 여행마지막날인 4일 차에 편도티켓으로 바뀌게 됐다.

돌아가는 표를 찢어버렸으니 출국은 없고 입국만 있는 one-way티켓이 된 것이다.

그렇게 나의 인생을 바꿀 해외생활이 시작되었다.

 

한국에 잠깐 들어가기도 했었지만 다시 태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들어와서 몇 달 동안 여행을 하느라 모아놓은 돈도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당시엔 한국에 들어가는 게 너무나도 싫었기 때문에 이곳에 계속 있을 거라면 현지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여행 중에 만나게 된 사람을 통해 여행사에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방콕과 파타야를 거쳐 푸켓이라는 태국최대의 휴양도시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처음 현지생활을 시작할 때 나의 마음가짐은 돈은 많이 못 벌어도 되니 현지에서의 생활을 즐기고 다양한 체험들을 많이 해보는 것이 나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여행도 다니기로

 

그런데 자리를 잡고 일을 시작하자 상황이 전혀 뒤바뀌기 시작했다. 처음 가졌던 낭만적인 마음가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한국에서 치열하게 살던 내 모습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돈을 더 벌고 싶어졌다. 돈을 더 벌어야 더 행복한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돈을 더 벌자 여행을 하지 않게 됐다. 치열하게 일하니까 쉬는 날엔 좀 쉬고 싶어 졌다.

현지 맛집을 찾아 현지음식을 찾던 내가 한국식당이 모인 동네로 이사를 하고 현지음식보다 한국음식을 주로 먹게 되었다.

한국보다 배는 비싼 음식들을 매일같이 사 먹으니 돈을 벌어도 돈이 더 부족해졌다.

 

치열했던 한국에서의 기억이 싫어 여유롭고 느리지만 행복한 태국에서의 삶을 선택을 했던 것인데

자꾸 상황이 이상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적당량만 있으면 더 이상 필요 없을 줄 알았던 돈은 내게는 절대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가 되어갔고

그 돈을 채우기 위해 내가 해외체류를 시작했던 이유, 여행을 잃었다.

물론 그곳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은 내게 큰 도움을 주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내가 잘못된 방식의 삶을 정리하는 것에는 방해요소로 작용되었다.

코로나가 터지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아직 남아있는 비자부터 집안에 가전제품, 가구, 옷등을 헐값에 떠넘기고는 3년간 살았던 푸켓을 떠나게 되었다.

금전적으로는 손해를 많이 봤지만 이렇게 정리할 수 있어 나름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건대 나는 태국살이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지금도 태국에 가고 싶고 미친 듯이 그때 모습들이 미친듯 그립지만

그때의 내가 살던 방식은 여러 가지로 많이 잘못되어 있었다.

처음에 가졌던 목표를 잊고 방랑자스러운 삶을 살았었다.

차라리 그때 내가 여행사가 아니라 그저 한 여행객으로 남았더라면 하고 후회를 하기도 한다.

조금 창피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태국살이가 아니라 괜히 해외에서 한국살이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몸만 태국에 두고 누구보다 한국을 그리워하며 한국처럼 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가끔 연락 오는 태국 현지 친구들이 태국에 언제 돌아오냐고 묻는다. 

언제 돌아갈지보다도 앞으로 거주목적으로 태국에 가진 않을 거라고 대답한다.

그냥 놀러 갈 테니 얼굴이나 보자고

 

3년간의 태국생활은 너무나 즐거웠고 행복했다. 재밌던 순간도 즐거웠던 순간도 넘쳐났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멈춰있었다. 그래도 되는 줄 착각했었다. 

누구보다 달려야 하는 순간인 것도 모르고